
Christmas Festival of Bad Habits
체코 브르노 도심에서 전통적인 크리스마스 마켓의 개념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환하는 실험이 펼쳐졌다. 피어 콜렉티브(Peer Collective)와 아티스트 카테르지나 셰다(Kateřina Šedá)가 함께한 이 프로젝트는 소비 중심의 축제에서 벗어나, 고요함·공유·자기 성찰을 중심에 둔 새로운 도시 경험을 제안한다.
마사리코바 거리의 분주함에서 몇 걸음만 벗어나면 만날 수 있는 리임스케 나메스티(Římské náměstí)는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한 공간이었다. 올해 이 장소는 ‘나쁜 습관의 크리스마스 페스티벌’이라는 이름 아래, 도시와 개인의 관계를 다시 바라보는 실험 무대가 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아티스트 카테르지나 셰다, 피어 콜렉티브, 비영리 단체 레나디(Renadi), 브르노-스트르제드 행정구가 함께 진행했으며, 전통적인 크리스마스 마켓의 상업적 풍경 대신 도시 속 사유의 장소를 만들어낸다.
이 프로젝트의 출발점은 비영리 단체 레나디의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연말이 되면 사회적 약자들이 더욱 소외되기 쉬운 현실 속에서, 알코올과 소비 압박 없이 누구나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셰다는 여기에 오랫동안 이어온 작업인 「나쁜 습관의 국가 컬렉션(The National Collection of Bad Habits)」을 결합해, 모두에게 열려 있는 광장을 구상했다. 공간의 중심에는 ‘고해소(confessional)’라는 장치가 놓이고, 광장을 가로지르는 동선은 개인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여정으로 설정되었다.
이 축제에서 광장은 하나의 자기 성찰의 경로로 작동한다. 방문자는 일상의 습관과 약점을 비추는 장면들을 차례로 지나며, 타인의 경험과 자신의 모습을 비교하고, 이를 상징적으로 내려놓는 과정을 경험한다. 특정 집단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누구든 자신의 삶을 잠시 돌아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도록 열려 있다.
공간 구성은 피어 콜렉티브의 절제된 건축적 개입으로 완성됐다. 무대 구조에 쓰이는 모듈형 트러스 시스템 위에 흰색과 붉은색 패브릭 커튼을 걸어, 광장을 18개의 ‘방’처럼 분절했다. 이 커튼들은 방문자의 이동에 따라 연속적인 통로와 시선을 만들며, 하늘 아래 놓인 임시적인 실내 공간처럼 작동한다. 전체 면적은 약 2,478㎡로, 열 개의 테니스 코트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 커튼 구조는 물리적인 벽이 아닌 넘나들 수 있는 경계를 상징한다. 도시 한가운데서 혼자 머무를 수 있으면서도, 완전히 분리되지는 않는 부드러운 건축이다. 밤이 되면 흰 커튼 위로 ‘나쁜 습관의 국가 컬렉션’에 수집된 이야기들이 투사되며, 광장은 야외 전시장으로 변모한다. 낮은 조명과 잔잔한 음향이 더해져, 공적인 장소와 개인적 경험의 경계에 놓인 독특한 분위기를 만든다.
축제의 중심에는 여섯 개의 고해소가 놓여 있다. 전통적인 마켓의 판매 부스를 대신해, 이곳에서는 물건이 아니라 경험과 고백이 오간다. 방문자의 입력에 반응하는 시청각 시스템은 개인의 이야기를 집단적인 초상으로 엮어내며, 사적인 성찰을 공동의 경험으로 확장시킨다. 붉은 커튼 뒤편으로 빠져나오는 동선은, 잠시 고요해졌던 세계에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상징적 장면이 된다.
접근성 또한 중요한 주제로 다뤄졌다. 광장 바닥은 최소한의 개입으로 자갈을 고르게 다져, 휠체어 이용자와 유모차 모두가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지역 주민들은 축제 이전부터 공간 조성 과정에 참여했고, 알코올 판매를 금지함으로써 물리적·사회적 장벽을 동시에 낮췄다. 그 결과 이곳은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서로 다른 삶의 경험이 평등하게 마주치는 도시의 장이 되었다.
브르노의 이 작은 광장에서 펼쳐진 실험은, 크리스마스 마켓이라는 익숙한 도시 풍경을 재해석하며 공공 공간이 가질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조용히 보여준다.


































건축가 피어 콜렉티브 (Peer Collective), 카테르지나 셰다 (Kateřina Šedá)
위치 체코, 브르노, 프란티슈칸스카, 리임스케 나므녜스티
용도 파빌리온
프로젝트면적 1,784㎡
준공 2025
디자인팀 Vojtěch Heralecký, Jakub Čevela, Jan Urbášek, Radim Koutný, Monika Matějkovičová, Aneta Báčová
발주자 Brno-střed Municipal District
사진작가 Matej Haká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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