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ce of Land

이탈리아 돌로미티에서 열리는 국제 야외 미술 비엔날레 SMACH 2025의 선정작인 <Trace of Land>는 ELSE가 설계한 설치작으로, 거대한 원형 건초 롤이 알멘타라(Armentara)의 경사면을 오르내리며 도약하고, 그 뒤에 마른 풀의 흔적을 남긴다는 시적인 상상에서 출발했다. 이 이미지는 실제 풍경 속에서 지형을 따라 굽이치는 캐노피 형태로 구현되며, 노동과 풍경, 그리고 순환에 대한 사유를 불러일으킨다.

발 바디아(Val Badia)의 고산 초원에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압축에서 풀려난 건초 더미가 완만하게 굴곡진 지형을 따라 하나의 연속적인 경로를 이루며 이어진다. 멀리서 보면 이 건초의 길은 돌로미티 산맥의 산길을 연상시키고, 오르내리는 형태는 주변 봉우리의 능선을 닮아 있다. 본래 노동의 결과물이자 기능적 산물이었던 건초는, 이곳에서 도구와 인간의 노동, 그리고 자연의 관계를 드러내는 조형적 개입으로 전환된다.

목가적 풍경의 일부처럼 보이는 건초는 사실 기계화된 농업 과정 속에서 압축·운반·보관되는 산업적 산물이다. 올해 SMACH의 주제인 ‘la cu’(수확용 칼날을 가는 숫돌을 뜻하는 라틴어)처럼, 건초 역시 인간의 노동과 땅 사이의 상호작용을 상징한다. 압축된 형태에서 해방된 건초는 초원의 윤곽을 따라 펼쳐지며, 어떤 지점에서는 땅 위에 놓이고, 또 다른 지점에서는 가볍게 떠올라 그늘진 통로를 만든다. 이러한 물결치는 형상은 돌로미티의 산세를 닮아 인공과 자연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설치작은 인근의 전통 목조 헛간인 ‘타블라(tabla)’와도 조용한 대화를 나눈다.

구조는 최소한의 방식으로 구성된다. 수직 철근을 지면에 박고 수평 강봉으로 연결해 가벼운 프레임을 만들고, 그 위에 철망을 얹어 풀어진 건초를 지지한다. 건초는 풀 로프로 고정되며, 이 단순한 시스템은 지형과 길이에 유연하게 대응하면서도 초원에 최소한의 흔적만 남긴다. 가까이에서 보면 건초의 질감은 다층적이고 다공성으로, 빛을 부드럽게 걸러내며 거칠면서도 섬세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방문자는 캐노피를 따라 걷거나 그 아래를 지나며 초원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머물고, 교류할 수 있다. 직육면체 형태의 건초 더미는 좌석으로 사용되며, 기능과 추상의 경계를 다시 한 번 넘나든다. 시간이 지나 건초가 분해되면 다시 땅으로 돌아가고, 이 설치작은 사용과 소멸, 재생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순환을 완성한다.

 

 


건축가 이엘에스이(ELSE)
위치 이탈리아, 돌로미티, 라 크루스
준공 2025
대표건축가 Zhifei Xu, Zimo Zhang
발주자 SMACH
사진작가 Gustav Willeit,ELSE,Elisa Cappell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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