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ngmenli Private Residence

 

‘집 안에 쑤저우(苏州) 정원을 들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핑먼리(Pimenli) 프라이빗 레지던스는 이 질문을 가장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사례다. 쑤저우의 역사적 구역인 타오화우(桃花坞) 인근에 자리한 이 700㎡ 규모의 안정(中庭)과 1,000㎡의 실내 공간은, 장하이화(Zhang Haihua, Z+H Renhai Design)가 세대가 다른 가족들이 함께 머무는 주거에 대해 깊이 고민한 결과물이다. 이곳에서는 강남(江南) 특유의 시적 감성과 동시대 미니멀리즘이 따뜻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스며든다.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강남의 미학

입구에 들어서면 얇은 커튼이 마치 반투명한 선지(宣紙)의 역할을 한다. 햇빛이 화가가 되어 공간을 그려내고, 처마의 그림자가 잉크처럼 번지며 실내는 부드러운 긴장감으로 채워진다. 장하이화는 전통 모티프를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대신 선, 재료, 빛의 흐름을 조율해 강남의 미학을 현대적으로 해석한다. 그 결과, 정제되었으나 생동하는, ‘숨 쉬는 집’이 완성된다.

 

고전 정원 철학과 이탈리아 미니멀리즘의 교차

핑먼리는 한쪽에서는 쑤저우 정원의 공간 철학을, 다른 한쪽에서는 이탈리아 미니멀리즘을 차용한다. 공간의 정적(靜)은 빛의 움직임을 통해 다시 살아나고, 미니멀한 가구는 그림자와 함께 또 하나의 리듬을 만든다. 하루가 흐르는 동안 햇빛은 나무를 통과해 커튼 위에 물결처럼 드리워지고, 이러한 자연의 장면을 가장 적절한 위치에서 포착할 수 있도록 공간이 설계됐다. 야간에는 빛나는 내부가 마치 이탈리아 디자인 갤러리처럼 보이면서도, 그 자체로 하나의 중국 정원 속에 둥둥 떠 있는 듯한 분위기를 만든다. 바깥의 괴석, 나무, 중정의 바닥 패턴, 실내 기둥열, 중앙 홀이 하나의 축 위에 놓여 있으며, 이는 강남 대저택의 구성 방식과 유교적 공간 질서를 현대적으로 치환한 것이다.

 

동서 장인의 협업으로 만든 집

정원은 60대 장인 위안 스승의 손끝에서 완성됐다. 그는 돌의 결, 방향, 자연스러운 형태를 읽어내며, 태호석 하나하나를 산수화의 한 장면처럼 배치한다. 실내의 가구와 붙박이장은 이탈리아 장인들의 손길로 조율됐고, 중국과 이탈리아의 장인정신이 정밀하게 맞물린다. 미니멀한 벽 속에 완전히 매입된 캐비닛, 손끝에서 전해지는 재료의 촉감, 창 너머로 스치는 정원의 움직임은 모두 이 주거가 가진 ‘조용한 서사’를 이룬다. 명대 스타일의 가구, 손으로 연마한 청동 손잡이, 송나라 도자기까지—전통과 현대가 서로의 존재를 가볍게 비추며 공명한다.

 

동양적 미니멀 휴머니즘을 향한 실험

장하이화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동양적 미니멀 휴머니즘(Eastern Minimalist Humanism)’이라는 새로운 주거 패러다임을 구축하고자 했다. 이는 단순한 공간 구성보다 더 깊은 정신적 층위를 다루는 시도다. 동아시아 수묵화의 여백처럼, 거실·식당·가족 서재는 과도한 장식을 비워내고 흐름과 호흡, 일상의 리듬을 담을 수 있도록 구성됐다. 지하층의 대형 수납실과 드레스룸은 ‘실(實, storage)’과 ‘허(虛, living)’의 균형을 이루며, 기능과 미학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거주 경험을 설계한다.

 

생활·예술·풍경이 겹겹이 스며드는 집

핑먼리 프라이빗 레지던스는 단순한 주택이 아니라, 동서 디자인 철학과 장인정신, 현대적 휴머니즘이 교차하는 하나의 ‘살아 있는 정원’이다. 중국의 미래형 주거 모델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정교한 실험이자, 삶과 풍경이 조용히 하나로 이어지는 집이다.

 

 

 

디자이너  지+에이치 런하이 디자인(Z+H Renhai Design)
위치 중국, 쑤저우
용도 단독주택
건축면적 1,000㎡
준공 2024
프로젝트디자이너  Zhang Haihua
디자인팀 Wang Xiao, Sun Huihui
사진작가 Cai Yunpu


마실와이드 | 등록번호 : 서울, 아03630 | 등록일자 : 2015년 03월 11일 | 마실와이드 | 발행ㆍ편집인 : 김명규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지희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로8길 45-8 1층 | 발행일자 : 매일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