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고향의 자리에서
바다와 마을 사이, 풍경이 열리고 다시 닫히는 지점. 이청준 문학관이 놓인 곳은 단순한 장소 이상의 무게를 품고 있다. 어린 시절의 체험, 문학의 출발점,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기억들. 그 모든 층위가 얇게 쌓인 마을의 끝자락에 우리는 조심스럽게 건축을 놓았다. 이 공간은 문학관이자, 작가를 기억하는 장소이며, 동시에 작가를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어떤 풍경의 장치다. 문학관이라는 물리적 형태 너머로,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조용히 사유하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공간을 상상했다.
문장을 따라 걷는 건축
이청준의 문학은 언제나 구조를 품고 있다.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 인물과 공간 사이에 느슨하지만 치밀한 질서가 있다. 우리는 이 문학적 구조를 공간적 구조로 전환하고자 했다. 단절과 연결, 기억과 현재, 실재와 상상 사이의 진자 운동을 건축의 장면들로 엮었다. 건축은 세 개의 전시동과 그 사이의 외부 공간, 그리고 초입과 말미를 감싸는 두 개의 중첩된 마당으로 구성된다. 여정의 시작은 낮은 천장고의 도입 전시 공간이다. 다락방처럼 낮고 어둡지만 집중된 장소. 이청준이 맏형의 죽음 이후 남겨진 책을 통해 처음 문학을 만났던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출발한 장면이다. 그 이후 관람 동선은 점차 시야가 트이고, 빛과 소리, 바람이 개입하는 공간들로 확장되며, 이야기의 결을 따라 이동하게 된다.
풍경의 층위에 겹쳐놓은 문학의 지층
대지는 바다를 향해 완만히 열리고, 마을과 들판, 숲이 각기 다른 속도로 흐른다. 우리는 이 다양한 경사와 시야, 접근 조건을 존중하며, 자연스러운 동선 흐름과 공간의 리듬을 설정했다. 입구에 위치한 웰컴센터는 지역 주민과 관람객 모두에게 열려 있는 중립의 공간으로 계획되었고, 꿈의 언덕은 문학관의 주요 축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며 바다를 조망하는 이상적 공간으로 작동한다. 이곳에서부터 전시가 시작되는 이상의 뜰로, 그리고 전시동과 유채마당, 회귀의 뜰까지. 공간은 물리적으로 하강하면서, 기억과 감정은 고조되는 역진적 감정의 흐름을 유도한다. 마지막에 다시 돌아오는 회귀의 뜰은 단순한 순환형 동선의 반환점이 아니라, 삶의 원점으로 되돌아온 작가의 시선을 담은 장소로 작동한다.
서사적 흐름에 따른 공간의 배열
전체 배치는 기능적 구분과 공간적 전이, 정서적 고조를 고려한 조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상의 뜰을 기준으로 동측에는 전시동, 서측에는 교육 및 사무동을 배치하여 기능의 경계를 명확히 하였다. 관람객은 도입전시, 전시1관, 전시2관, 전시3관, 회귀의 뜰이라는 흐름 속에서 서사적 여정처럼 전시를 따라가게 된다. 전시1관은 체험형 콘텐츠와 서적 중심의 공간이며, 전시2관은 영상, 미디어아트, 소리 중심의 전시를 통해 ‘청각적 사유’를 이끈다. 전시3관은 유품 중심의 내밀한 공간으로, 유채마당과 그 너머 선학동 유채마을을 조망할 수 있도록 계획되어 있다. 각 전시동은 작은 외부 공간들과 연결되며, 내부의 정서적 흐름을 바깥 풍경과 맞닿게 한다.
낮은 건축, 조용한 재료
전체 매스는 전시동과 교육동을 포함하되, 분절된 형태로 나누어 배치했다. 이 분절은 이청준 문학의 구조처럼 긴장과 완화를 반복하며 공간에 리듬을 만든다. 건물의 높이는 주변 주거지와 어울리도록 낮게 설정되었고, 지붕의 경사는 마을의 지붕선과 조응하면서도, 작가의 사유곡선을 닮은 미묘한 틀어짐을 담았다. 외장 재료는 시간에 따라 질감이 변하는 목재와 짙은 색조의 벽돌을 중심으로 구성하였으며, 전체적으로는 조용하고 물러난 색감 위에, 일부 전시 영역에서는 다채로운 재질감으로 감각적 긴장을 부여했다. 건축은 전면에 나서지 않되, 배경이 아니라 장면으로 존재하도록 계획되었다.
조용한 회귀의 자리
문학관의 끝자락, 유채마당을 지나 도착하는 회귀의 뜰. 이 공간은 다시 돌아온 고향의 풍경을 조용히 마주하게 하는 곳이다. 이청준의 문학 속 많은 인물들이 그러했듯, 삶의 궤적 끝에서 다시 고향을 바라보며 자신을 되돌아보는 순간이 이곳에 녹아 있다. 고요하게 펼쳐진 들판과 그 너머의 마을, 바다. 회귀의 뜰은 단순한 정원이 아니라, ‘되새김의 장소’로 계획되었다. 방문자는 이곳에서 조용히 앉아, 전시를 통해 만나온 이야기들을 정리하고, 자신 안에 남은 작가의 문장 하나를 마음으로 되새길 수 있기를 바란다.
건축사사무소H2L
4등작_ 건축사사무소H2L (https://architectsh2l.com/)
대표건축가 황정현
대지면적 20,685㎡
연면적 891.41㎡
건축면적 743.71㎡
건폐율 3.59%
용적률 4.30%
최고높이 6.85m
층수 지하 1층, 지상 1층
구조 철근콘크리트구조
대표건축가 황정현
디자인팀 정소연, 최지수, 이유진, 표중현
주차대수 16대
발주처 장흥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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