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는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오로지 나 자신의 내면을 만나는 공간이다. 서울에서 한 시간 거리인 남양주 수동에 위치한 부지는 물만은 동네라는 이름처럼 철마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이 언제나 가득한 곳이다. 오랫동안 사유지로 작은 폭포와 연못을 관리해 왔던 의뢰인은 이곳에 거주가 아닌 사색의 공간을 갖고 싶어 했다. 처음 부지를 방문 한 건 10여 년 전이다. 시골길을 한참 달려와 비포장도로를 통과하면 너무나 아름다운 작은 폭포와 개울이 나타나고 산에서 내려온 물은 계곡을 끊임없이 흘러 내려갔다. 너무나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나니 건축가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겁이 났고 뭔가 만들어 이 환경을 해치면 안 될 것 같았다. 다행히 의뢰인은 급하지 않았고 천천히 시간을 두고 많은 대화를 하며 방향을 잡아갔다.
본격적으로 설계를 시작한 건 2020년이었다. 이 환경을 해치지 않을 건축물은 어떤 것일지 고민한 끝에 그것은 태초의 자연과 인간이 만나 만들었던 가장 원초적인 집의 형태일 거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그리고 에스키모의 이글루나 몽골의 게르에서 원초적 집의 형태로 원형인 집을 찾게 되었다. 중앙에 추위를 피할 수 있는 불이 있고 모든 가족이 동그랗게 모여 앉으면 위계가 없는 평등한 공간이자 기능으로 분할 되지 않고 다양한 행위를 담아내는 공간이 된다. 원은 가장 완벽한 기하학 형태이기도 하다. 그 형태는 처음 이곳에 와서 모든 방위의 자연과 빛을 담아내고 싶다는 욕심을 풀어주는 열쇠이기도 했다. 원형의 공간은 특정 방향으로 열리지 않고 모든 방위에 공평하게 받아들여 주는 형태이다.
한 개의 원에서 시작한 설계는 두 개의 원으로 확장되고 두 개의 원이 서로 만나고 중첩되며 다양하고 풍성한 공간을 만들어 내었다. 두 원의 중심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하나의 중심은 외부의 하늘을 담는 공간이 되고 다른 하나는 내부에 하늘을 받아들이는 공간이 된다. 하늘과 자연을 숭상하던 원시적 삶의 모습을 담아내는 건축이 길 바랬다. 현관에 들어서면 작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북녘 빛이 전부인 동굴 같은 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계단을 따라 반 층 올라가면 계곡의 물이 흘러가듯 빛과 공기가 어우러져 끊임없이 흘러가는 공간이 드러나고 봄·여름·가을·겨울의 자연, 동서남북의 빛, 그 풍부함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계절에 따라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나무 그림자들은 공간을 끊임없이 변화시키고 그 중심에는 적막과도 같은 붉은 카펫이 깔린 원형의 공간이 있다. 오큘러스라 불리는 둥근 천창은 판테온 같은 고대 종교 건축물에 중요한 요소였다. 그 공간에서는 가만히 앉아있어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하늘빛이 변화하며 나만을 위한 작은 하늘을 느낀다.
공간을 경험하는 데 있어 형태, 빛뿐만 아니라 재료의 질감과 색상 또한 중요한 요소이다. 손과 발에 닿는 감각, 눈으로 느껴지는 색감과 패턴이 복합적인 느낌을 만들어 낸다. 무언가의 내부는 오래된 흙집처럼 균일한 재료를 사용했다. 흐르는 하나의 공간을 상상했기에 마이크로시멘트를 사용한 벽과 바닥은 끊김 없이 이어진다. 최소한의 재료를 사용해 공간의 형태와 빛과 그림자에 집중하길 의도했다. 가구와 조명은 비어있는 공간을 채우는 또 다른 요소다. 가구가 놓이고 조명이 들어오면 공간의 느낌은 또 달라진다. 하지만, 가구와 조명이 주인공이 되면 안 되며 공간에 놓이는 가구는 원래 그곳이 일부인 듯 어우러져야 한다. 무언가는 최소한의 가구로 공간을 비워놓았다. 그래도 빈 공간을 좋은 음악으로 채우고 싶어 아킬레 카스틸리오니가 디자인한 브리온 베가 오디오가 한쪽 벽에 놓이게 되었다.
건축물이 땅에 자리 잡으면 처음엔 어색하다. 아직 환경의 일부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가고 낙엽도 쌓이고 덩굴도 올라오고 하면 비로소 땅에 자리 잡기 시작한다. 시간이 많이 흐르면 이곳에 원래 있던 커다란 바위처럼 보이리라 상상했다. 세월의 흔적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자연에 가까운 재료를 사용하고 싶었기에, 그 외피는 흙으로 만든 벽돌을 사용했다. 베이지색의 벽돌은 시간이 가면 주변의 색들에 물들어 자연의 일부가 될 것이다.
건축가의 역할은 보통 건물이 준공되면 끝난다. 설계하고 건축물이 잘 지어지는지 감리하고 완성이 되면 우리는 떠나고 건축물의 삶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시간이 가면 낡기 시작하고 변형되기도 한다. 그림처럼 깨끗한 처음 건축물은 사라지고 삶의 흔적이 두껍게 쌓여간다. 어떤 건물들은 그렇게 시간의 켜가 쌓여서 중년 신사처럼 멋지게 늙어간다. 무언가가 그런 건축이길 바란다.
건축가 스노우에이드(Snow AIDe)
위치 경기도 남영주시 수동면
용도 박호현, 김현주
대지면적 993㎡
건축면적 180.89㎡
연면적 214.46㎡
규모 지상 2층
건폐율 18.21%
용적률 19.98%
설계기간 2020.12. – 2022.3.
시공기간 2022.3. – 2024.1.
준공 2025.2.
대표건축가 박호현, 김현주
구조엔지니어 SDM구조
기계엔지니어 태영 EMC
전기엔지니어 태영 EMC
설비 태영 EMC
사진작가 김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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